"너는 뇌 주름에 다림질한 거 같아"



평소에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잘 어울려 다니면서 놀기도 하고 서로 위로도 받으면서 좋게 지내고 있었는데, 묘하게 권고사직을 당하기 직전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실망하게 되고 갑자기 모든 관계가 점점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많다면 많았던 관계들이 차츰차츰 정리가 되어버리고 나중에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왜 이런 시련이 나에게 왔느냐 억울하다고 목 녹아 울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나와 인연 맺었던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아니 나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주 공부를 해보니 둘 다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에게 찾아온 운이 오묘하게도 인간관계가 고립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기운이었던 것이다. 바로 화개살과 무인성 때문에.


사주에서 화개살은 활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고독한 삶을 예고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45세가 넘어가는 시기부터 이 기운이 활성화가 되는데 40대 중반을 넘어서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많은 인간관계를 펼치고 있으니 사주의 기운이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나 보다.


그래서 40대 후반에 아주 강력한 기운이 들어와 많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났고 결국 강제로 고독한 삶으로 들어가도록 재촉하였다. 그러다 보니 모임이나 인간관계에서 거리가 생기고 서서히 하나둘씩 끊어져 버리다가 나중에는 다 잘려나가버렸다.




"너는 뇌 주름에 다림질한 거 같아. 뇌가 아주 순진해."


무자비한 인간관계 단절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내 성격에서 출발한다.


사주 탓을 하자면 무인성 팔자이기 때문이다. 무인성 사주를 알고 처음에는 많이 실망했다. 인터넷에 조금 검색해 보면 단식(單式) 판단이라 무리수는 있지만 좋은 말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공부를 못한다, 엄마나 부모 사랑을 못 받는다, 인덕이 없다, 생각이 짧다, 인간관계에 눈치가 없다. 자기 권리를 못 챙긴다, 자기주장을 못한다, 머리 쓰는 것을 싫어한다 등등 많은 말들이 떠돈다.


솔직히 이 부분을 모두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책을 읽거나 특히 인문학에 관심이 없고, 부모님 사랑을 받았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인맥은 있었지만 인덕이 없는 편도 맞다.


또한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을 싫어하고 특히 인간관계에서 타인에 속마음을 읽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남편이 뇌 주름에 다림질했다고 우스갯말도 했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익숙한 스타일이고 사람들을 좋아하다 보니 사람들을 챙겨주면서 좋은 사람으로 그들과 함께 있으려고 했다. 겉으로 보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없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상태가 심각하다.


베푸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에 속마음은 잘 모르다 보니 그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누려고 했다. 그러니 받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니 짜증을 내고 다른 것을 원했다.


도움을 주었을 때 여러 가지 반응이 돌아오는데 크게는 둘로 나눠진다. 고맙게 받지만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거절하는 사람과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으로. 인간의 속마음을 간파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다 보니 이 둘 사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더 끈끈한 인간관계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들도 나중에는 나를 도와줄 거야 착각하며, 사람들은 누구나 선하다는 이상한 믿음에 의지하면서.




"이럴 줄 몰랐는데 너무 실망이야, 나는 좋은 마음에서 도와줬는데 남는 건 상처뿐이야. 억울해 억울하다고."


그런데 살면서 만났던 이기적인 유형들은 이런 내 마음에 허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순수하게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간파했다.


정작 나 자신은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이기적인 사람은 내 도움에 손길을 전혀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계속 부려먹고 이용하고 착취할 뿐이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인정받고 있구나 뿌듯하다고 느끼고 그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하지만 사람이란 아무리 뇌가 순수해도 순도 100%는 없다. 언제 가는 알아차리게 된다. 문제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것이고 결국 그것이 사람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으로 돌아와버렸다.


억울하고 분노가 치솟는다. 내가 좋은 사람이고 좋은 마음에서 도와줬다고 생각하니 더 화가 폭발하며 울부짖는다.




내 안에 있었던 인정 중독이 모든 상황을 그렇게 이끌고 간 거였다. 처음에는 타인이 문제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온전히 내 문제였다. 그 타인을 선택한 사람도 나였고 그에게 끌려다닌 것도 나였다. 그들에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연극한 것도 나였다.


스스로 착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착한 척을 하니 난 착한 사람인 줄 착각했었다. 실제로는 남들과 비교하고 돈 계산하고 손해 보기 싫은 마음이고 내 것을 더 챙기고 싶은 사람인데 그것을 숨기려는 방편으로 착한 사람 연극을 한 것이었다.


이제는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분노가 에고를 직시하게 만들었다. 이젠 내가 너무 괴롭다 보니 나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고 싶지 않은 내 안에 상처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나를 잡아당기니 고구마 줄기처럼 엄청난 것들이 따라 올라온다.




초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는 겨울이었다. 그 당시 주택에 주방이 달린 방 한 칸에 세 들어서 살고 있었다. 마당에 있는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고 막둥이가 갓 태어나 한 방에 여섯 식구가 잠을 자던 시절이었다.


동네 친구들하고 신나게 밖에서 놀다가 약간 어둑할 저녁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따라 아버지가 일찍 퇴근해서 집에 있었다. 평소라면 술 먹고 늦게 집에 들어와야 하는데.


집에 가서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내 손을 아버지가 쳐다본다. 한 손에는 벙어리장갑이 있고 다른 손에는 벙어리장갑이 없는 것이다.


"수니야 왼손에 장갑은 어디 있어?"

"아, 장갑? 음, 아마 없어진 거 같아."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져봐도 없다. 그래서 잃어버린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 장갑을 찾아오라고 그전에는 집에 오지 말라고.


엄마는 그 당시 아버지와 사이도 그리 좋지 않았기에 아버지에 눈치를 봤던 거 같고 그렇게 나는 집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장갑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찾으러 가는 것은 포기했다.


추운 겨울밤, 마냥 대문 밖에 골목길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한참을 앉아있는데 싸라기눈이 내린다. 그때 그 눈이 참 스산했다. 그때 우연히 동네 할머니와 손자가 손을 잡고 집 앞 동네 골목길을 지나간다. 그러면서 그 할머니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손자에게 말을 한다.


"네가 나쁜 짓을 하면 저기 저 형아처럼 나중에 저렇게 벌받는다. 그러니까 어른 말씀을 잘 들으라 알았지?"

"예, 할머니"

"쯧쯧쯧, 춥다 어여가자."​


기분이 굉장히 처참하다. 난 솔직히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를 그 장갑 한 짝 때문에 이런 수모를 겪는다는 게 너무나도 억울했다.


그것이 이렇게 할머니에게 손가락 짓을 받을 일인지?


추운 겨울날 저녁도 못 먹고 집에서 쫓겨나야 할 일인지?


속으로 무척이나 억울한 마음이었다.




아마 그 작은 사건으로 기억에 재구성이 일어났다. 엄마와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은 삭제되고 수모를 겪게 만든 사람으로 둔갑되어버린 것이다.


진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당신에게 사주 명리로 삶의 지도 그리기' 이 책에 부제목도 딱 나를 향하는 문구 같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때리고 있었던 그 당시 딱 내 심정이었다.


골목길 땅바닥에 쭈그려 앉은 지 두 시간 정도 지나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중에 집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상처를 받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다.


그 후로 엄마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알고 보면 그 할머니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건데 아이는 이해할 능력이 부족했다.




평소에 해맑은 아이처럼 세상과 사람을 마냥 순수하게 별생각 없이 바라보며 나름 편안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 순간 인간관계 시련이 찾아오고 옛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못 보던 세상에 이면을 보면서 문득 어른이 되어버렸다.


바로 없었던 인성 운이 들어온 시기였던 것이다. 편인 운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관점이 아이 시선에서 성인 시선으로 확 달라져버렸다. 예전처럼 세상모르고 속 편하게 살았던 시절은 끝나버렸고 성인이 감당해야 할 마음의 괴로운 무게가 생겼다.


없던 인성 운이 들어오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속마음이 이전과 달리 보이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나를 어떻게 이용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잘해주니 고마워서 나도 잘해줬는데 운 덕분에 눈을 떠보니 그것은 나를 이용하기 위한 미끼였고 밑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시커먼 내 속마음도 보였다.


알고 보니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착각했다는걸, 진짜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 가서 암에 걸렸다는 의사에 진단을 듣기 전까지는, 몸에 암세포가 있어도 전혀 마음에 고통이 없다. 하지만 의사의 한마디를 듣고 나니 갑자기 온몸이 엄청나게 아프고 하늘이 무너질듯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무인성 사주가 암세포가 없는 건강한 몸으로 착각하고 살다가 인성 운이 들어오면 그제야 암이 걸렸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암 진단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내가 암에 걸린지도 모르고, 그렇게 몸을 혹사하면서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가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무인성의 인성 운은 마치 심리상태가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처럼 살다가, 갑자기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접하고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차곡차곡 몸에 암세포가 쌓였는데 전혀 인지를 하지 못하다가 암 진단을 받는 순간, 지나온 수많은 과거 이야기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후회와 반성에 눈물이 이어진다.


자신에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았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너무 큰 충격이 다가온다.


이미 존재하여 몸을 병들게 했던 암세포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가, 의사의 진단으로 알아차리는 순간, 그 충격은 생각보다 클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이미 마음에 병이 들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운이 들어오니 그제야 병든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던 거다. 평소에 정기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건강한 척 외면하고 살았던 거다.


하지만 사주 공부와 글쓰기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괴로움은 실체가 없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었다.


몸을 돌보지 않은 것도 내가 한 것이요, 상대방의 속마음이 시커멓다고 생각하며, 날 이용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가 일으킨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힘든 것이었다.

현실에서 암에 걸렸더라도 의사가 제공하는 치료를 잘 받고 가족들의 응원과 함께 그 병을 이겨낸다면 더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이런 개 같은 남편이 나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는 심리상담사였고 치료 약이었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었다. 옆에서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토닥토닥 위로해 주는 참 든든하고 포근한 존재였다. 남편에 큰 도움이 있었기에 괴로운 한 생각을 내려놓고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더 이상 암세포를 키우지 않는 건강한 삶으로. 자신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재설정하여 행복으로 가는 문을 남편이 열어주었다. 그게 개집 문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