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묻힌 보석이 호주로?
남편은 호주 이민을 갈구했는데 희한하게도 그는 외국에 한 번도 여행을 한 적도 없다. 게다가 심한 영어 울렁증까지. 호주에서 써먹을 수 있는 특별한 기술도 없다. 그곳에 친척이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왜 그토록 원했을까?
사주를 공부해 보니 어느 정도는 그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그에게 부족한 수(水) 기운 때문이다.
그의 사주를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흙 속에 묻혀있는 보석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보석으로 반짝반짝 빛을 내며 금은방에 진열되어 사람들에 주목을 받아 그 진가를 확인받아야 하는데 그 보석이 땅에 파묻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처음에 남편 사주를 쳐다보다가 이점을 알고 상당히 놀랐다.
왜냐하면 그의 삶에 흔적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상당히 명석하고 아는 지식도 많고 현명하고 게다가 예의 바르다.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도 많아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살짝 여담이지만 MBTI 검사를 해보면 유재석과 같은 성인군자형 ISFP 유형으로 나온다. 그가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성인군자 같은 면모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살면서 그런 것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거의 유일하게 아내인 내가 그를 알아봤다.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인 것도 맞지만 사주로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있다.
남편이 보석인데 흙에 묻혀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필요한 기운을 무엇일까? 바로 수 기운이다. 일단 그 많은 흙들을 물로 씻겨 내보내야 숨겨졌던 보석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남편에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 수 기운 즉, 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물이 조금 있어서는 안 된다. 워낙 두터운 흙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많은 물이 필요하다.
살짝 눈치를 챘는가? 그 많은 물에 기운을 가진 사람이 바로 아내인 나이다.
사주 여덟 글자 중에서 무려 수 기운이 네 글자가 있고 수 기운 중에서도 가장 기운이 세다는 임자일주이다.
즉, 많은 물을 가진 내 입장에서 보니 그는 보석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무도 캐내지 않은 나만 발견한 보석으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아마 내가 물이 많은 사주가 아니었다면 그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답답한 흙으로만 보였을 테니까.
다들 인연 따라 만나듯이 나와 남편도 수 기운이라는 자연에 한 줄기에서 만난 것이다. 남편에게 필요한 수 기운을 배우자를 통해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그는 또 다른 수 기운을 끌어오길 원했다.
그것이 바로 해외 이민인 것이다.
수 기운이 왜 생뚱맞게 이민으로 연결되는가 잠깐 설명하자면 바로 해외가 완전히 낯선 공간, 낯선 환경이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쓰지 못하는 환경, 익숙함에서 벗어난 낯선 문화,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사이에 놓이는 상황은 긴장 상태를 불러온다. 그것이 정신에 항상 자극을 주게 되고 깨어있음에 수 기운을 불러온다. 요약하면 편안한 상태가 아닌 긴장 상태일 때 수 기운이 충족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는 수 기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호주 이민을 종용했던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수 기운으로 사주에 과한 흙을 덜어내려고 했다. 과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남편을 불편하게 했던, 남편이라는 보석을 덮고 있던 흙덩어리, 그것은 바로 토(土) 기운이다.
남편처럼 토 기운이 많고 수 기운이 없는 경우는 정신적으로 메마름, 허덕임, 마음에 여유가 없는 퍽퍽한 삶을 산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그는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영화 '똥파리' 포스터에 이렇게 적혀있다.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남편이 한국을 떠날 때 심정을 격하게 표현한다면 이런 심정은 아니었을까?
사주에 그 많은 토(土) 기운이 어린 시절 그에게 정신적으로 메마름과 퍽퍽한 삶을 주었던 것인가? 결국 그는 과거 아픈 가족관계 기억이 있는 한국 땅에서 벗어나 새로운 땅 호주에서 촉촉한 삶으로 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호주에 이민 올 운명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근데 왜 호주였을까?
다른 나라도 많은데 아마도 남편에게는 화(火) 기운도 없는데 따뜻한 나라, 남반구 호주가 화 기운을 보충한 측면도 있다고 추정해 본다.
추가로 신혼여행 후 호주로 이민 오기 전까지 왜 그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긴 자유인 생활이 이민을 부추긴 동기가 된 셈은 맞다.
한국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니 새로운 돌파구로 호주로 가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사주 측면에서도 그럴만한 이유가 숨겨져있다. 그 당시 남편에게 술(戌)이라는 기운이 들어왔는데 이것은 아주 큰 태산으로 비유할 수 있다. 남편이 보석이라고 했을 때 운에서 더 큰 흙더미가 찾아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더 숨어있는 생활을 한 것이다. 특히 술(戌)이라는 기운은 큰 산이라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면이 커서 웬만한 일자리와는 인연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 그는 자연의 기운이 이끄는 대로 그런 방향으로 이끌려간 것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것을 알리 없이 그저 잔소리 여왕으로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는 잘못이 없고 운에 흐름에 내맡겨 살아온 것뿐인데. 이렇게 생각하니 그에 대한 불만도 많이 사라지고 오히려 그 당시 힘들게 맘 고생했던 그에 모습이 떠올라서 미안함 마음이 든다.
역시 과거는 현재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는 거 같다.
그때 그가 회사를 때려치웠고 백수생활을 한 것이 오히려 호주 이민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를 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에피소드를 팔아서 이렇게 글을 적고 있으니 나쁜 게 나쁜 게 아닌 것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