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안되는게 사주탓이라고?



영어 울렁증을 가진 남편,


그는 호주 이민생활에 가장 필요한 영어 의사소통에 'F'라는 낙제점을 받았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짜증이 치솟아 싸우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나아지는 기미는 없고 부부 싸움 상처만 남았다.


그런데 그가 무식상 사주라는 것을 발견하고선


아, 왜 그랬는지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렇게 그를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서 연민까지 생겨났다.







"오늘은 17일이니 17번 학생 일어나서 오늘 수업 나갈 부분 읽어봐."


"예?, 음, 콜록, 아, 저어녁 상을 물리고, 에, 마당에 높은 펴어상에 누으면, 콜록, 하아늘에는 별이이 초총, 음, 평상에 누우면, 아니 별이 초오총총 하하였다."


"웅성웅성."


"자, 조용히. 거기까지, 그만 읽고. 너는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알았지? 다음은 27번이 일어나서 읽어봐."


초등학교 5학년으로 올라간지 얼마 안 된 3월 초 국어 수업 시간, 그는 담임에 지적에 어쩔 수 없이 일어서서 책을 읽는데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지만 겨우 책을 부여잡고 옆에 친구만 겨우 들릴 정도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더듬더듬 한 문장을 읽어내려간다. 하지만 정신이 없는 나머지 읽은 부분을 다시 읽고 만다.


친구들은 글도 못 읽는다면서 웅성웅성 시끄럽다. 그나마 선생이 중간에 끊어주어 다행이다.


그는 휴 한숨을 쉬고 의자에 앉아 진땀을 닦으며 빨라진 심장소리가 안정되기를, 어서 빨리 수업 시간 종이 울리기를 기도하며, 고개를 숙여 책상만 쳐다보고 있다.


혼날까 봐 겁이 나지만 선생이 시키는 대로 수업 후 교무실에 찾아갔다.


창피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 선생 앞에 얌전히 서있다.




17번 학생 책 읽는 모양을 보니 오후에 남겨 나머지 수업이라도 시켜야 하나 고민이 되는 담임이다.


4학년 시험 성적표를 확인해 보니 의외로 모든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맞은 거 아닌가. 국어, 도덕, 사회 과목 모두에서 100점을 맞았다.


"옳거니 이 녀석 오늘 잘 걸렸다. 너 여태 커닝한 거지? 정직하게 선생님한테 말해야 해. 어서 불어."


"아, 아, 아니에요 선생님 저, 저는 커닝 안 했어요. 아니에요."


"조그만 게 어디서 거짓말까지 배웠어? 빨리 제대로 말해."


"진짜예요. 선생님. 저, 저는 거짓말 안 해요."


"음, 그래? 어디 보자."


잠시 그의 생활기록부를 보고서는


"그 공부 잘하는 공주가 너희 누나가 맞아?"


"예. 맞아요."


"음, 누나는 책도 또박또박 잘 읽던데 집에서 누나랑 책 읽는 연습 좀 하고 알았지? 그래, 알았어. 이제 집에 가봐."


"아, 예.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꾸벅 절을 하고 교무실을 나온다.




남편은 학교 수업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그의 언어 표현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어릴 때 남들보다도 말이 늦게 터졌고 한글 맞춤법도 많이 틀려서 받아쓰기 성적은 형편없었다. 또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어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특히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웬만하면 피하기만 했다.


특히 음악 시간에는 노래를 친구들 앞에서 시키는 일이 있으면 너무 어색하고 창피해서 아예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서있다가 결국 손바닥을 맞는 체벌을 받기도 했다.




"자 따라서 읽어. 하우 머치 이즈 잇?

하우 머치 이즈 잇?

잇 이즈 텐 달라스. 잇 이즈 텐 달라스.

칠판에 적은 거 잘 필기하고.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중학교 1학년 영어수업 시간, 그는 한글도 제대로 읽지를 못하는데 영어는 도대체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따라 읽고 말하라니, 그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나름 공부를 하려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너무 어렵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는 영어에 관심이 멀어졌고 영어에 손을 놓으면서 저절로 포기를 선택했다.


영어는 긴 문장이 정답이라는 이상한 말을 한 동네 형을 따라, 긴 문장만 골라서 시험지를 답안을 제출했다. 영어는 점수는 아예 포기했다.


그래도 그는 비상한 머리가 있었다. 사람 이름이나 역사의 연도를 줄줄 정확하게 잘 외웠다. 그래서 포기한 영어를 제외하고는 다른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맞아서 국립대학교에 비인기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 적성에 맞지도 않는 영업일을 시작했다. 뭔가 자신에 단점을 극복해 보고자 선택한 건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너무 몰라서 아무거나 골랐는지 몰라도 1년 넘게 해보니 영 맞지를 않는다.


그래서 일을 관두고 생각한 것은 공무원 시험. 기억력 좋은 머리 하나로 승부를 걸어보기로 하고 노량진 고시촌으로 올라와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2년 가까이 공부를 했는데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


바로 영어에 발목이 잡혀서 합격하지 못했다.


아무리 다른 과목에서 점수를 높게 뽑아도 영어가 과락을 면하지 못하니 합격은 이미 물 건너 간 셈이었다.


그도 이번 기회에 영어를 정복하려고 맨투맨을 붙잡고 꾸역꾸역 공부해 보지만 1장 동사의 종류를 넘어가지 못한다.


그는 성격상 완벽하게 이해를 못 하면 그다음 장을 넘어가지 못했다.


이해를 했을 때 암기가 되는 그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게 과목이 영어다.


영어는 이해를 요구하는 과목이 아니고 무조건 여러 번 반복해서 몸으로 습득하는 것인데 그걸 알 턱이 없으니 결국 영어는 또 포기한다.




어찌어찌 대기업에 사원으로 늦게 입사를 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서 그의 발목을 잡는 것 역시 영어.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피해 가기란 여간 쉽지 않다. 학창 시절 발목을 잡은 것도, 사회생활 발목을 잡는 것도 영어다.


직장에서도 승진을 하려면 토익점수를 제출해야 하는데 아예 시험에 응시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승진은 이미 먼 나라 이야기다. 그래서 이제는 안되는 영어를 포기하고 남들이 쉽다는 일본어에 야심 차게 도전해 본다.


하지만 영어보다 더 어려운 게 일본어라는 말을 남기고 바로 포기했다.


극도로 심한 영어 알레르기가 있고, 남들 앞에서 말하기 어려워하고, 내성적이라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 그는




왜 호주로 이민을 가고 싶어 했나?


도저히 말이 안 되는데 희한하게 그는 갈구했다.


그만큼 한국에서 탈출하고픈 욕구가 더 강했다고 밖에 설명되지 않지만.


여하튼 그렇게 시드니로 이민 왔고 그는 새로운 곳에서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겠는가? 당연히 영어 울렁증은 호주에서 더욱 심화되었고 도저히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 정말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그러다가 사주 공부를 하니 왜 그가 영어에 그다지도 취약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식상이 없는 무식상 사주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사주 강의를 참조하면 식상은 정신세계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몸을 통해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즉 남편에 타고난 기운에는 말로 표현하는 몸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 부족한 것을 극복한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남편 같은 경우는 매우 부족한 편인 셈이다.


그러니 식상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면 그들이 하는 노력에 10배 아니 100배를 해야 하는데 평범한 사람은 그게 아주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같이 배워도 익히는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니 본인은 얼마나 더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어려운 것을 붙잡고 끙끙 노력을 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식상이 있는 나에게는 쉽게 느껴져서 남편도 그럴 줄 알았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가 뒷산을 올라가는 느낌이라면 그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는데 그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내 방식을 강요하고 그렇게 따라오지 못한 그를 나무라고 소리 지르고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사주 공부를 하게 되니 그의 부족함을 내가 따져 묻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배려해 주고 이해해 주어야 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에 그에게 성깔을 부렸던 과거가 떠오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영어 울렁증 남편을 이해하게 되니 예전처럼 영어에 대한 강요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웬만하면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은 도맡아서 하고 있다.




"수니야, 귀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능력이 있으니까 남편에게 힘을 준다고 생각해."


영어로 남편 조금 도와주고 온갖 생색에 구박을 했던 나에게 남편이 해준 충고가 새삼 생각난다. 남편이 영어를 포기했듯이, 나도 남편 영어를 포기했다.


그렇게 남편이 영어를 해야 한다는 고집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랬더니 요새는 남편이 살짝 변하고 있다. 어느 날은 차집에 가서 우롱차를 시켜서 마시는데 물이 떨어졌다.


그래서 뜨거운 물을 리필하고 싶은데 내가 가만히 있으니 남편이 나서서 종업원에게 말한다.


"리필 플리즈."